김지음, 빈고 지음, 자본의 바깥: 커먼즈은행 빈고의 탈자본 금융생활 탐구, 힐데와소피, 2025

2023년 10월 27일 읽기의집에서 김지음 님을 통해 처음 “빈고” 이야기를 접했다. 처음 빈고라는 은행의 존재를 알고 그 시스템의 원리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땐 흥미로운 시도이긴 하지만 나와는 먼 이야기로 들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은행 이자를 사양해서 나온 돈으로 공유지를 만든다.’ 정도가 될 텐데 그때의 나에겐 공유지와 공동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건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보험, 그리고 재태크와 주식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에 물음표가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내 주변 모두가 하기때문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 믿었으나 거부하고 싶던 자본수익에 대한 반발감을 “빈고”라는 시도가 건드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해가 완전히 가진 않았으나 가슴은 뛰었다. 이번에 “자본의 바깥”을 읽으니 내 가슴이 왜 뛰었는지 이제야 납득이 갔다. 18년이란 시간동안 지속된 “빈고”는 자본주의를 거부하겠다는 단호하고 분명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책을 읽고서야 나는 무려 자본을 거부하겠다는 결정이 이 모든 일의 시작에 있었다는 당연한 진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정신이 지금까지 빈고를 만들어왔고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나는 자본에 의해 수탈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본을 통해 수탈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돈을 자본으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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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월 동안 김지음 님과 살구라는 두 젊은 청년들이 동남아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겪은 환대의 경험이 이 모든 시작이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공동체가 갖기 마련인 폐쇄성은 경계했다. 그래서 이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열린 구조를 만드렬고 했다. 아니 어쩌면 계속 여행자, 손님으로 살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다. 언제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고, 떠나고 싶을 때는 또 훌쩍 떠날 수 있고, 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을 꿈꿨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자들의 공동체에서 우리도 손님들 중에 한 명으로 살아보자고 작당했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형태의 삶이겠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이 재밌는 설정을 구상하는 데 몇 마디 필요하지도 않았고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재미가 없어지면 바꾸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다. 이 설정이 앞으로 이 집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그리고 이 설정은 구현하기도 어렵지만 쉽게 포기하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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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환대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에 오기까지 그 두 사람에게 손을 내민 이들의 친절과 다정함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환대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덕에 ‘빈집’이라는 공간이 2008년에 집들이 잔치와 함께 탄생한다. ‘가난할 빈’이자 ‘손님 빈’을 뜻하는 ‘빈’집이란 이름은 무엇보다 새로운 손님을 맞을 ‘빈 공간’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손님이 그 공간을 채우며 환대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손님이 다시 또다른 손님을 환대하는 주인이 된다. 누군가를 환대하는 열린 공간,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고 나는 공간을 추구했던 정신. 그건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나에게 무척 생소한 태도였다. 이 마음에서 시작했기에 빈고가 혼자만의 고독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빈집에서 발견된 공유의 방식은 양쪽 모두가 자본수익을 사양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출자자는 같이 사는 식구를 위해 보증금에서 발생한 자본수익을 사양하고, 이용자는 이로 인해서 발생한 자본수익, 즉 줄어드는 월세 부담을 사양하고 출자자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이렇게 양쪽에서 자본수익을 사양함으로써 빈집 사람들은 항상 가난했지만, 항상 잉여의 돈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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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규모가 커지면서 빈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새로운 손님과 떠나는 주인뿐 아니라 빈집들 사이로 사람들의 이동 또한 끊임없이 일어났다. 자신이 보증금을 낸 집을 떠나 다른 빈집에서 사는 경우가 생긴다.
이 복잡한 돈과 사람의 얽힘을 어떻게 풀 것인가. 이 질문에서 2010년 빈마을금고가 만들어지고 이는 바로 빈고라는 커먼즈은행의 시작이 된다. 저자는 빈집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빈고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빈집에 특별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빈집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특별한 주체성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환경이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들이 빈집에서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주체를 환영하고, 지지하고, 유지하고, 재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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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사람들은 자신들 사이에서 ‘선물, 수탈, 상품’ 3가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교환을 발견하게 된다. 보증금을 낸 출자자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그에게 보증금을 은행에 넣어두었을 때 발생할 이자를 주려는 이용자와 이를 사양하는 출자자, 자신이 낸 보증금의 이익을 이용자에게 오히려 주려는 출자자의 제안을 사양하는 이용자.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빈집 사람들은 ‘사양교환’을 발견한다. 이 책의 이론편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4가지 유형의 마지막이자 빈고 은행의 철학이 바로 빈집의 이러한 사양하는 일상에서 발견된 것이다. 한 사람의 선의만에 기대지 않는 구조가 되지 않도록 그들은 ‘사양교환’을 토대로 손님을 환대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 출자자든, 이용자든 한쪽이 크게 손해를 보지않고 서로 자신이 가질 수도 있었을 조금씩의 자본수익을 사양하는 태도로 남은 자본수익을 공동체를 위해 쓰게 되면서 사양교환은 불특정 다수 또는 자본에 수탈당한 제3자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공유자본을 누린 이들이 남긴 자본수익이 다시 공유자본으로 확장된다.

은행 D에게 자본수익은 애초에 사양해야 할 것, 사라져야 할 것이다. 자본수익이 사라지고 자본이 소멸한다고 해도 화폐의 흐름과 주체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다. 빼앗기던 사람이 사라질 뿐이다. 결국 은행 D는 탈자본의 원리로 구성된 탈자본은행으로서, 지금 바로 탈자본을 실천하는 주체들, 그래서 자본주의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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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자본에서 발생한 수익이 다시 자본을 낳는다면, 빈고에서는 사양교환으로 발생한 수익이 공유자본을 낳는다.

커먼즈금융의 핵심은 자본수익에 대한 사양에 있다. 사양은 ‘권리 없음’, ‘자선’, ‘증여’, ‘포기’와는 다르다. 자본의 금융과 같이 커머너들 각자는 자본수익에 대한 권리가 있다. 만약 누군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당하게 맞서 권리를 주장하는 게 옳다. 그래서 자본수익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커머너는 다르 ㄴ사람의 권리와 기여도 있고, 더 필요한 사림이 있을 수도 있으며, 내 것만은 아니기에 사양한다. 자선은 내 것을 누군가에게 줌으로써 어떤 만족을 얻는 것이라면, 사양은 애초에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의 것으로 미뤄두는 행위다. 증여가 얼굴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물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는 행위라면, 사양은 얼굴을 모르더라도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자원이 돌아가도록 하는 행위다. 증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게 중요하다면, 사양은 내가 갖지 않는 게 중요하다. 포기가 나의 소유권을 버림으로써 자원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행위라면, 사양은 공동의 관계와 자원을 유지하면서 잘 관리되고 쓰여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행위다. 그리고 사양은 언젠가 사양하기를 그만둔다면 언제든 회수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포기하는 즉시 권리가 사라지는 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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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하는 태도가 가진 힘. 그건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겠다는 의지 같이 느껴졌다. 가난하다고 비굴하거나 추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 그 어떤 부자보다 고귀하고 풍요로운 선택을 이 사양하는 태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사양 교환은 개인의 윤리적 선택보다는 집단적으로 실행하는 상호적인 전략적 선택이다.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다면 원치 않아도 소유경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고 여기서 홀로 윤리적 선택을 하는 건 경쟁에서 밀려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사양교환은 소유경쟁에서 홀로 싸우거나 홀로 쓰러지지 말고 다 같이 사양경쟁으로 함께 전환하자고 서로를 설득하고 신회를 형성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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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라는 은행은 나에게 익숙한 프로그래밍과 회계 지식을 가진 운영진들의 기여로 만들어졌다. 자본의 속도를 높이는 데에만 쓰인다는 생각에 멀어진 프로그래밍이 이렇게 탈자본하는데 활용되다니 허탈하면서도 기뻐서 웃음이 계속 나왔다. 다음 영상에서 김지음 저자는 빈고에서도 지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빈고라는 은행을 운영하는 일에는 사실 많은 시간이 들지 않지만 빈고에서 가능했던 놀라운 일들이 주는 즐거움이 그가 다시 빈고로 돌아가 활동하게 했다고 한다.

[“자본의 규칙을 다시 쓰다” 경쟁과 소유를 넘어선 18년의 여정 김지음의 『자본의 바깥』](https://youtu.be/Vc88h-b0wRk?si=O2TD45BQ6EL3uwiw)

이 책에 나온 저자의 자전거에 대한 철학도 인상적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일이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점령된 공유지를 되찾는 일이라는 생각은 내가 하던 익숙한 활동이 가진 힘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자전거가 도로를 달리면 도로는 자전거 길이 된다. 자전거 메신저들이 늘어나고, 메신저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들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길은 더 안전해지고 우리의 도시는 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에 점령당한 길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골목길과 이웃들이 오며가며 얘기 나누는 마을길을 다시 만들것이고,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숲길과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물길을 지켜낼 것이다.

자전거 메신저 네트워크 사이트에 찾아가보니 그 시도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도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전거 타기를 꺼리게 된 내 마음에 새로 용기를 준 글이 보여 반가웠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사실 도로가 그렇게 두렵고 위험한 것만도 아니다. 실제로 자전거를 혼자서 탈 때는 위협적인 경우가 종종 있지만, 둘이서만 같이 가도 상당한 안도감이 생기고, 셋이면 가끔 장난칠 여유마저 생긴다. 한 달에 한 번 도심 한복판을 떼지어 달리는 자전거들의 무리, 발바리 떼잔차질을 아는가? 수십 수백 대의 자전거가 차선 하나를 통째로 누비며 달리는 이들에게 도로가 위험하다는 건 이미 딴 세상 이야기다.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나가는 건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가야 한다. 하나가 나가지 않으면 무리를 지을 수도 없다. 다른 방법을 나는 모른다. 좋은 자전거도로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릴 것인가? 당신이 도로를 나가지 않는다면 그런 행운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어떤 도시교통 전문가가 자전거가 다니지 않는 길에 좋은 자전거 도로를 만들 수 있겠는가? 다니다보면 길이 생기는 것이지, 길이 생긴다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도 도로가 두려웠다. 그러던 나에게 용기를 준 것은 그냥 내 옆을 스쳐지나가던 한 대의 허름한 자전거였다. 나는 그 자전거를 따라서, 그 자전거와 함께 달렸고, 어느새 혼자서도 어떤 길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자전거가 되고 싶다. 서울 한복판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용기를 내고 페달을 밟아라. 도로를 달려라. 자동차의 경적 따위는 무시해라. 필요하다면 차선 하나를 접수해라. 방금 차선 하나가 자전거 길이 되었다. 당신을 뒤따르는 사람은 이제 자동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고맙다. 당신 덕분에 우리의 길은 그만큼 더 안전해졌고, 우리의 도시는 그만큼 더 살 만한 곳이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본주의에서 나는, 노동자인 우리는 그저 무력한가? 시도조차 하지 않고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던 건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를 계속 찾아왔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유쾌하게 자본주의를 거부하다니. 자본의 바깥에서 살기로 선택한 이 무모하고 대책없는 청년들의 도전, 또는 놀이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자본주의에서 무뎌진 가슴이 살아가는 실감으로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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