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작가 도슨트 해설, 조지오웰의 “1984”
- 조지 오웰, 도슨트 해설: 고병권, “1984”, 그린비, 2024
이십대에 “1984”를 읽었을 때는 주인공의 무력함만 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내용은 잘 안 떠오르면서도 읽고 나서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1984”에 대한 고작가님의 도슨트를 읽고 나니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고문과 죽음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의 기쁨, 매혹, 즐거움. 머리가 아닌 몸에서 나온 생을 향한 긍정은 폭력 앞에 한없이 약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분명 존재했고, 아무리 총과 칼로 죽이고 억눌러도 계속 나타나 저항할 것이라는 긍정. 언제 봐도 놀라운 믿음이지만 오늘처럼 마음이 힘들 때는 특히나 더 나를 안정시킨다.
“1984”와 관련해서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겁니다. 우리가 어떤 요소들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색조가 달라집니다. … 오웰은 “잉글랜드은행 주변의 좁고 음침한 길들”에도 “봄은 이러저런 신호로 자신을 알리며 찾아온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도시에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에 거짓말이 넘쳐흐른다 해도”이 봄을 막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두꺼비 단상, 나는 왜 쓰는가 297,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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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가 출간된 이듬해 오웰은 병원에서 피를 토하며 죽었습니다. 폐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폐가 좋을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폐결핵으로 요양 중일 때조차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런던의 대기는 최악이었습니다(1952년 런던 스모그 사태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정도니까요.) 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1943년에 어머니, 1945년에 아내, 1946년에 누이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가 숨진 병실 구석에는 낚싯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곧잘 낚시를 다녔습니다. 치료를 마치면 스위스에서 요양을 하며 낚시도 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죽기 두 달 전에 재혼을 했습니다. “1984”가 성공을 거두자 개인용 비행기를 빌려 아내와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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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란 사물이나 사건, 문자, 문양 등을 통해 무언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어떤 것을 과거, 현재, 미래 등과 관련지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는 과거 어느 왕의 힘을 나타내는 기호가 될 수 있습니다. 눈 앞에 있는 피라미드를 통해 과거의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또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면 지금 바람이 분다고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부끼는 깃발’은 ‘바람이 부는’ 현재를 나타내는 기호가 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구름은 조금 뒤 비가 내릴 것임을 나타내는 기호가 될 수 있습니다. “1984”의 이야기들은 세 번째 기호에 가깝습니다. 이런 기호를 보통 ‘징후’, ‘증상’, ‘조짐’, ‘신호’ 같은 말로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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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웰이 피를 흘리며 죽었다는 사실과 그 병실에 낚싯대를 세워 두었다는 사실 중, 오웰의 삶에 대해 더 잘 말해 주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전체주의가 윈스턴을 얼마나 철저히 파괴했는지가 아니라 윈스턴이 전체주의로부터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방어했으며, 죄의식에서 벗어나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게 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주의에 맞설 저항의 원천, 전체주의적 미래와는 다른 미래를 열어 줄 힘의 원천을 어떻게 깨닫는지의 관점에서 “1984”를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웰은 1943년에 쓴 어느 글에서 전체주의적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제어할장치는 두 가지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는 진실이 그 힘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상의 일부가 정복되지 않은 채로 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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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에서 몸은 진실의 노트이기도 합니다. 감각의 글자들로 새겨진 노트. 당에서 눈과 귀로 얻은 증거를 거부하라고 말하는 것은 몸을 믿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전체주의에 맞서는 진실이 적혀 있는 곳, 진실의 힘이 보관된 곳이 몸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 자신들이 숨죽여 내는 소리는 포착하지 못하겠지만 저 지빠귀 소리는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다 보면 마이크 반대편에 있는 “딱정벌레처럼 생긴 작은 남자”도 열심히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지 모른다고요. 새소리에 홀려 감시자라는 본분을 잊는 겁니다. 몸이 느끼고 매혹되는 것을 머리가 막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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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폭력 상담사 교육 때 국가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며 강사가 고문당하는 어떤 전쟁 포로 여성의 모습을 생중계하는 영상을 틀어준 이후로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져 도무지 풀길이 없어 주말 내내 힘들어하고 있다. 그래서 이 말이 꼭 필요했다. ‘고문과 처형이 진실을 바꿀 순 없다.’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트럼프로 인해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오늘은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로 만이천명이나 죽었다는 뉴스를 봤다. 자꾸 부정적이고 우울한 사실만 눈에 들어오면서도 동시에 이 문장이 문득 내 머리속에서 떠올랐다. 몇 번이고 되뇌었다.
당은 그를 고문하고 처형했지만 그가 깨달은 진실, 그가 느낀 기쁨 중 어떤 것도 무효로 만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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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사람을 통제할 뿐입니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조차 지도자 덕분인 것처럼 의식을 조작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태양의 운동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떻든 자연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도 미리 차단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은 여전히 봄인 것이다. 공장엔 원자탄이 쌓여 가고, 도시엔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에는 거짓말이 넘쳐 흐른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아무리 못마땅한들, 독재자도 관료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두꺼비 단상,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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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들을 미래를 위한 자원의 ‘저장소’라는 표현도 분명 읽었지만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기에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표현이라 흥미로웠다. 생명력이 몸에서 몸으로 전달된다는 것, 그 생명력이 바로 저항이라는 것. 내 몸이 그렇게나 강하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몸이 살아 있다는 것, 살아있는 몸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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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프롤레스’(proles)는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로마의 최하층 계급을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는데요, 자식을 낳는 것말고는 나라에 기여하는 바가 없는 자들이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 “프롤들은 불멸의 존재였고, 마당에 있는 용맹한 여인을 보면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각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천 년이 걸릴지라도 그날이 올 때까지 그들은 모든 역경을 견디며 새들처럼 살아남아 당이 부여한 적 없고 제거할 수도 없는 생명력을 몸에서 몸으로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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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들에게 미래가 달린 이유는 그들이 저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재건되어야 할 때 필요한 자원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프롤들은 세상의 멸종식물, 멸종동물들이 살아 있는 원시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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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가진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구절들이 있었다. ‘생각하게 하는 힘’. 요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을 때가 많았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글은 능력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다시 올라오고 만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일을 정신적으로 겪는 것과 같습니다. “1984”를 쓰는 동안 오웰 역시 작품 속 세상을 정신적으로 겪어야 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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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힘을 지키는 것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윈스턴의 노트입니다. … 이 노트는 비록 사적인 차원에서이기는 하지만 개인을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만들어주는 장치입니다. 개인들은 글쓰기를 통해 기억하고 상상합니다. 한마디로 생각하는 존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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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은 과거의 물건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박물관과는 다릅니다. … 고물상은 별 쓸모가 없는 자질구레한 사물들을 파는 곳입니다. … 그런데 공식적으로는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는 물건들이 어떤 개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오웰은 글쓰기에서도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자기 글에 “엉뚱하다고 여길만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으며, 자신은 “구체적인 대상들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들에서 즐거움 얻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쓸모없어 보이는 조각들이 “내 안에 깊이 자리한 좋고 싫음”, 말하자면 내밀한 취향을 형성하고 이것이 없다면 좋은 글은 불가능합니다.(나는 왜 쓰는가,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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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작품을 “1984”뿐 아니라 읽지 못했던 글들까지 다시 읽고 싶다. 세상에 이런 글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그런 글들을 내가 발견해서 나는 계속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오웰은 1946년 사회정치주간지인 “트리뷴”에 게제한 짧은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나무나 물고기나 나비나 (내 경우 첫 대상인) 두꺼비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애정을 간직함으로써 평화롭고 상식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들을 잃어버린 세계, 그래서 “강철과 콘크리트 마라고 찬양할 게 없는” 그런 이념이 지배하는 곳에서 “인류는 증오와 지도자 숭배” 외에는 출구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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