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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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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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은 생각하고 창조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으로 이 책은 시작되며 그 이유를 울프는 이틀 동안 한 울프로 생각되는 한 여성 소설가의 뒤를 쫓으며 전달한다. 이 책은 1928년 10월 캠브리지의 뉴넘 대학의 요청으로 ‘여성과 픽션’ 이라는 주제에 대해 두 곳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고있다. 왜 이 책이 페미니즘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다음처럼 인간에 대한 울프의 정확한 이해가 담긴 부분이 좋았다. 어떤 남성 교수의 글에 담긴 여성을 향한 분노, 그 분노가 공정하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간파해내는 그 눈이 울프라는 작가가 가진 힘이구나 느꼈다. 나도 이 글 덕에 페미니즘을 더 알고 싶어져서 다음 책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열등성에 대한 위대한 저작을 집필 중인 교수는 내 그림 속에서 매우 화나고 아주 추악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건 무익한 아침 일과를 끝내는 방법으로는 나태한 것이었지요. 그런 나태함 속에서, 우리가 빠져드는 망상 속에서, 때로는 깊이 감춰져 있는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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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놓인 책더미를 뒤적여보며 이유가 무엇이든 이런 책들은 내가 가진 목적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책들은 학문적으로 쓸모가 없었지요. … 이 책들은 진실의 하얀빛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빨간빛으로 쓰였으니까요. … 일단 분노라고 이름 붙인 그 감정이 지닌 진정한 본질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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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여성에 대해 공정하게 글을 썼다면,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이용하여 자신의 논거를 규명했다면, 저런 결론이 아니라 이런 결론이기를 바란다는 흔적을 내보이지 않았다면, 읽는 사람도 화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완두콩은 초록색이고 카나리아는 노란색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듯 독자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겁니다. 그렇구나 하고 말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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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오스틴과 샬롯 브론테를 비교하는 부분에서도 울프가 ‘분노’라는 감정이 창작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제인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그녀가 여성이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분노로 인해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분노에 취한 사람은 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지적에 울프의 날카로운 시선 돋보였다. 요즘 왜 분노가 문제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할 때마다 울프의 이 논의들이 도움이 많이 된다. 분노는 어떤 말을 참아야할 순간에 참지 못하게 한다. 분별력을 잃게 한다. 그래서 창작자가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말을 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제인 오스틴의 조카는 전기에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숙모가 어떻게 이 모든 성과를 이루어냈던 것인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숙모는 따로 마련된 독립된 서재가 없었고, 갖가지 방해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공동 거실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숙모는 가족이 아닌 하인이나 손님, 다른 누구도 자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했다.” 제인 오스틴은 문소리가 끼익하는 소리를 반겼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원고를 누가 들어오기 전에 숨길 수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오만과 편견”을 쓰는 일을 부끄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나는 궁금했습니다. 제인 오스틴이 손님들의 눈을 피해 원고를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오만과 편견”은 더 나은 소설이 되었을까? 그러나 제인 오스틴이 처했던 상황이 작품에 해를 끼친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경이로운 점인지도 모릅니다. 1800년경, 증오도 공포도 고통도 없이, 항의하거나 설교하는 일도 없이 글을 쓰는 여성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가 쓴 방식이라고요. 셰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의 정신은 장애물들을 모두 남김없이 불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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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옆에 “제인 에어”를 내려놓으면서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저런 구절을 쓰는 여성은 제인 오스틴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경련과 분노를 눈여겨본다면, 그녀가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전적으로 표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비틀리고 변형될 것입니다. 침착하게 글을 써야하는 순간에 분노를 참지 못할 것입니다. 현명하게 글을 써야하는 순간에 분별력을 잃고 말겠지요.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하는 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짓눌리고 비틀린 그녀가 어떻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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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나오는 문학과 책에 대한 울프의 생각은 한 개인의 능력을 넘어 집단지성의 힘에 주목하고 있었다. 한 명의 천재에 주목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생각이 20대의 나를 그것과 멀어지게 했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이 책을 읽었더라면 조금은 다르게 문학을 접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작이란 홀로 외로이 탄생하는 게 아니니까요. 걸작은 여러 해에 걸쳐 수많은 이들이 함께 생각한 결과이고, 그 때문에 하나의 목소리 이면에 집단의 경험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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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개별적으로 평가하곤 하지만, 책이란 서로 연관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이 무명의 여성을 앞서 잠깐 살펴본 다른 여성들의 후손으로 여기고 그녀가 그 여성들의 개성과 한계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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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나 기질의 재능은 설탕이나 버터처럼 무게를 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 한 성과 다른 성을 경쟁시키고, 한 자질을 다른 자실과 대립시키며, 우월함은 제 것이라 주장하고 열등함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이 모든 행위는 인간 존재의 단계로 보면 십대 수준에 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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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까요. 소설은 시와 철학과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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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실재로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말로 울프의 강의는 끝난다. 울프가 묘사한 ‘실재’를 나도 때때로 경험해봤기에 그게 조금은 낯설고 어려운 개념어인 ‘실재’라고 불려서 어색하긴 했으나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에는 수긍이 갔다. 그 실재에 관한 경험들이 바로 그녀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어쩌면 내가 계속 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비록 나는 그걸 실재라고 부르기 전에는 잊어버렸었지만.
실재라는 것은 한 방에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을 환히 비추기도 하고, 가벼운 말 한마디를 기억에 담아두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별빛 아래 집으로 걸어가는 이를 압도하고 웅변하는 세계보다 침묵하는 세계를 더 현실적인 것으로 여기게도 하지요. … 그러나 무엇이든 실재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됩니다. … 실재를 찾고 잘 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이지요. … 책을 읽고 나면 모든 것이 한층 강렬해 보이지요. … 따라서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당부하는 뜻은 실재를 마주하는 활기찬 삶을, 활기차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 199-200
- 버지니아 울프가 참 매력적인 작가라는 걸 알게 되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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