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 쓰치 지음, 박소영 옮김, 침몰가족 - 비혼 싱글맘의 공동육아기, 정은문고, 2022

가족이란 무엇인가 묻게 만드는 책이었다.

경제적으로 빠듯한 싱글맘과 갓난아기를 구해준 사람은 분명 그곳에 와준 사람들이었다. 의무도 계약도 없었다. 오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느슨한 관계. … 엄마는 혼자서 나를 키울 수 없음을 인정한 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시작해 전단을 뿌린 결과 많은 사람이 엄마에게 걸려들었다. … 세상에는 이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음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다. 그 길을 선택한 엄마에게 나는 깊이 감사했다.

  • 200-201

’가족’이라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전하고 싶었다. 돌보미도, 야마 씨도, 엄마도 똑같은 한 인간이었다. 그들은 ‘돌보미’나 ‘아버지’, ‘어머니’라는 역할로 나를 대한 것이 아니다.

  • 203

나는 영화를 공개하면서 ‘가족’을 만들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던 침몰가족과 엄마에게 질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 207

침몰가족은 호코라는 사람으로부터 탄생했다. 이런 사람 곁이라면 침몰가족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언제나 호코를 짝사랑하는 느낌이야.” 침몰가족에서 함께 지냈던 사람들도, 출산하기 전부터 알고 지낸 엄마의 친구들도 모두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누구와도 지나치게 깊은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 야마 씨와 나, 세 사람의 혈연관계로 이어진 생활에서도 벗어났던 것처럼 인간관계에서 ‘굴레’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 210

뭐, 그건 부끄럽지. 이렇게 전국에서 상영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이쿠타의 집(본가)에서 공동육아의 힌트를 얻은 것도 과거에 이미 행동했던 사람들이 세상에 기록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몰가족을 보고 여기에서 힌트를 얻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어.

  • 221

하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엄마가 아이의 감시자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싫다. 나는 쓰치와 산책을 하고 그림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싶기도 하지만, 암실에 가거나 영화를 보고 싶다. 보육원이나 혈연관계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존재를 가까이에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것이 내가 쓰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방식이다. 무리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감각이 둔해지면 아이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이쪽저쪽을 오가고 싶다. 누군가의 말을 듣기만 하고 억지로 외우는 건 싫다. 쓰치를 낳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고, 여러 사람이 집에 오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즐겁다.

  • 228

호코 씨의 철학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잉걸불’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세계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도’ 죽어가는 불을 조금씩 살려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녀에게 어린시절 잉걸불을 함께 바라봐준 아버지 N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N 씨는 서서히 떠오르는 생명을 바라보는 신비로운 시간을 공유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나에게는 잉걸불이 있다. … 비록 세계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도 나는 또 다른 세계의 불빛을 안다. 잉걸불을 찾아낼 수 있다. 잉걸불은 지금 ‘마음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잉걸불을 만나게 해준 N 씨에게 감사를 전한다.

  • 47

호코 씨로부터 피어오른 잉걸불은 결코 활활 타오르는 뜨거움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은은한 불빛에 사람들은 오히려 느긋함을 느끼고 모여든다.

나는 침몰가족에서 자란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침몰가족을 시작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도 우연이다. … 엄청나게 관계가 나쁜 줄만 알았던 야마 씨와의 사이에서 엄마가 뜻밖의 임신을 한 것도 우연이다. 전단을 보고 모인 사람들도 운명이 아니라 그 장소와 그 시기에 우연히 있었기에 나를 돌보게 되었다. 엄마가 공동 육아를 생각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우연히 할머니의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나도 모르게 ‘그거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217 ‘그거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 이러한 여유로움이야말로 공동육아라는 해방적 실천이 가능할 수 있는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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