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동물해방 관련 고전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이 책의 3장 “‘진짜’ 현실은 어떤가”에는 대부분의 육식주의 제품이 생산되는 공장식 농장의 본질적 요소인 동물 학대에 초점을 맞춘다. 동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3장을 읽고 나서는 한동안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낸 것은 저자가 육식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찰이 적확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육식주의의 비가시성을 해체하는데 왜 중요한지, 육식주의와 같은 폭력적인 시스템의 진실을 증언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육식주의’라는 용어를 저자가 처음 만들고 사용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고기 먹는 일과 비건주의를 일관된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비건주의에 대해서는, 동물과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한 일련의 가정들을 기초로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식에 대해서는 당연한 일, ‘자연스러운’ 행위,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왜 그러는지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물을 먹는다. 그 행위의 근저에 있는 신념체계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이 신념체계를 나는 ‘육식주의(carnism)’라고 부른다.(이 이름은 저자가 만들어 낸 것이다.-옮긴이)

  • p54, 육식주의:”원래 그런 거야”

육식주의의 비가시성을 드러내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육식주의를 성차별과 비교해서 제시하는 부분은 동물해방 운동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보인다.

성차별에 대한 도전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성공한 것은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가 아니라 성차별을 가능케 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부각함으로써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차별을 지지하지 않지만,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육식주의에 도전코자 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들과 비슷한 접근법을 취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 p244, 독서 동아리 토론 가이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으며 내가 비건 지향을 하면서 다른 사회문제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준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대규모의 육식주의적 소비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들 자체는 육식주의에 고유한 게 아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육식주의는 수많은 폭력적 이데올로기, 억압적 시스템 중 하나일 뿐이다. … 그래서 육식주의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몸담은 모든 시스템에 대해 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 p221, 7. 바로 보고 증언하기: 육식주의에서 연민과 공감으로

육식주의라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점이 내가 후원하고 있는 단체인 DxE 인스타에 최근 올라온 게시물 ‘DxE 챕터멤버 포틀럭 파티 : DxE는 왜 ‘비거니즘’을 이야기하지 않을까?🌱‘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생각이 더 확장될 수 있었다. 이날 포트럭파티에서는 <왜 DxE에서는 왜 ‘비거니즘’을 말하지 않을까?> 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1.DxE 활동가로 활동하려면 비건을 해야할까?

2.비거니즘만으로 동물해방을 앞당길 수 있을까?

3.우리는 죽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자유롭게 활동가들의 생각을 나누어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다음은 이에 대한 맴버들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직접행동 DxE가 하고자하는 동물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즉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참여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건강, 직업, 지역, 공간 등 여러가지 이유로 스스로 엄격한 비거니즘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에게 죄책감을 지우지 않아야 합니다. DxE는 그렇게 구조의 문제가 개인화되고, 운동으로 전환될 수 있는 에너지가 죄책감, 윤리적인 문제가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는 당연히 육식을 해도 된다는 의견이 아니며, 다만 해악적인 시스템 안에서 완전무결한 ‘개인’ 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함께 구조를 바꾸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런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가 가진 모순을 떠안고 이후의 변화를 함께 실천에 옮기는 것. 그 이후에 비건실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전의 비건실천과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운동에서 비거니즘의 수행도가 그 사람이 얼마나 동물해방을 원하는지 측정하는 척도로 사용되는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액션을 수행하거나 조직에서 여러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보다 얼마나 진지하게 동물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고 행동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질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동물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만들어지려면, ‘인구의 몇 %가 비건이 되어야 한다’ 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인구의 몇%가 동물해방운동에 관심이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동물해방운동이 소비주의 위주의 비거니즘 운동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비거니즘이 동물권의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육식주의라는 시스템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개인이 육식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으로 ‘증언’이 가지는 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폭력적인 시스템들은 구조적 특징이 서로 비슷하므로, 육식주의의 진실을 바로 보고 증언하는 일은 다른 시스템들에 대해 증언할 때 참조할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사실 증언 능력이 육식주의라는 특정 대상을 넘어서는 것은 증언이란 단순히 우리가 행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증언은 고립된 행위가 아니라 우리 자신과 관계 맺고 세계와 관계 맺는 하나의 방법이다. 

  • p222, 7. 바로 보고 증언하기: 육식주의에서 연민과 공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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