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라, 아이작 싱어,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 등 다양한 작가들의 채식에 대한 생각이 이 책에 인용되어 있다고 소개하는 어느 네이버 블로그 글을 보고 이 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작가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 또한 나의 흥미를 끌었다. 프랑스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짧고 가벼운 에피소드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거기에 담긴 생각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오랜 기간 숙성된 생각과 논리가 담겨있다. 저자는 ‘고기를 끊기로 결심하고도 목표를 이루기까지 수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처음 몇 년은 관련 자료를 읽고 정보를 얻는 데 시간을 보냈고, 동물 착취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인습에서 벗어나 스스로 달라지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만큼 비거니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공부한 흔적이 감동을 주는 문장이 많아 밑줄을 많이 긋게 되는 책이었다.  반면 에세이 형식이라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조가 아니기때문에 장마다 비슷한 주장이 반복되는 느낌도 없지 않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기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저자 자체가 유머에 능한 분은 아니라는 느낌이라 그저 가볍게 읽기에는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비거니즘에 대한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한다면 꼭 한번씩은 만나게 되는 주제에 대해 다방면으로 다루고 있고 그 깊이 또한 충분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한 다른 분들의 리뷰가 인용 형식이 많은 것도 에세이라는 형식과 더불어 여러 주제에 대한 성찰이 담긴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장점을 살려 나 또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몇 군데 소개하는 형식으로 리뷰를 하고자 한다.

첫째로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vegan이라는 말이 나타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부분이다. 전에 엄마가 ‘vegan’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vegetarian’의 줄임말이야’ 정도로 말했었다. 그 답을 하고도 이게 맞나 나까지 헷갈렸었는데 다음 부분을 읽고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Vegan Society는 영국 Vegetarian Society에서 나온 모임이다. Vegetarian Society의 몇몇 회원이 치즈와 달걀을 포함한 동물성 식품을 완전히 배제하는 소모임을 결성하려 하자, Vegetarian Society가 거부했다. 이에 왓슨 부부 Donald Watson, Dorothy Watson와 헨더슨 부부 George A. Henderson, Fay K. Henderson, 엘시 슈리글리 Elsie Shrigley를 비롯한 몇몇 회원이 1944년 11월에 새로운 조직을 결성했다. … 창단 멤버인 헨더슨 부부는 vegan이란 단어를 고안했다. 두 사람이  ⟪ Allvegan ⟫ 잡지를 펴냈는데, vegan은 당시 유명한 베지테리언 식당 ‘Vega’에서 비롯된 말이다. 

  • p.51-52, <비거니즘의 역사="">

‘동물 해방과 관련된 표현과 개념이 많아지면, 동물 해방을 위한 운동 역시 규모가 커진다.’라는 저자의 주장 또한 인상적이었다. 비거니즘과 관련된 용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생각의 집을 짓는 단어들’ 장이 있는데, 작가로서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더불어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나 역시 비거니즘이란 말을 알기 전에는 동물 착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모든 동물성 식품과 제품을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철학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이 단어 하나를 앎으로써 내가 동물을 사물로 바라보지 않는 계기가 됐다.

  • p.54-55, 생각의 집을 짓는 단어들

이것도 하나의 선입견이겠으나 문화 선진국이라고 여겨졌던 프랑스도 우리나라만큼 비건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는 점도 이 책을 보고 새로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동물권 운동을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육식 위주 식생활 문화와 남성 우월주의 때문이다. 심지어 좌파도 대부분 마초 성향이어서, 동물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낀다고 말하면 감상적인 사람으로 비치기 일쑤다. 육가공 업체의 막강한 로비와 사냥 문화 때문에 사회적 상황도 동물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고, 동물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 으레 인간 혐오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치부된다. 봉건주의 역사가 기록,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하는 성향 때문에 규범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상류층에서 선례를 보인 것은 좋게 생각하고, 서민층에서 시작한 것은 그리 좋게 인식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강하다.   

  • P.157,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

비건 관련 독서모임이나 음식모임에 나갈 때마다 성비로 볼 때 여자가 많은 건 왜일까 의문이 들었을 때가 많았다. 그 의문이 ‘전체 비건 인구의 80퍼센트(일반 채식주의자는 60퍼센트)가 여성’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여성과 비거니즘’이라는 장을 읽으며 여성과 비거니즘의 관계에 대해 사고가 구체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철학자 겸 생태운동가인 캐럴 애덤스가 여성에 대한 억압과 동물에 대한 억압의 구조적 관계를 파헤쳤듯이, 대다수 비건이 여성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동물 해방을 위한 운동은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서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 P. 175, 여성과 비거니즘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충격을 받은 것은 저자가 비거니즘이 하나의 정치운동이라는 점을 뚜렷이 그리고 강한 어조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주장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로 브뤼셀에서 문학 세미나가 열렸을 때 이야기가 있다.
 세미나가 끝나고 뒤풀이 때 저자가 비건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행사 주최자는 이에 대해 “각자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비건임을 밝히자 당시 이사님이 “요즘은 워낙 취향이 다양하니까”라는 류의 말을 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 말이 묘하게 귀에 거슬렸지만 어떤 점이 마음에 걸리는지 나조차도 분명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대화의 상대도 상사인지라 그저 웃으며 넘겼었다. 그때 일을 저자가 겪은 상황과 비교해 읽다보니 그 당시 나는 분위기를 깨는 듯한 말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다음 대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럼 선생님은 제가 고기를 먹지 않도록 강요할 생각입니까?”
“당장 이 자리에서 그럴 수야 없지요. 설득하고 싶을 뿐,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모직이든 가죽이든 치즈든) 우리가 동물을 고기나 물건으로 사용하는 관행을 멈췄으면 좋겠고, 동물을 죽여 그 사체를 먹는 행위도 정부가 법으로 금지했으면 합니다. 조금 전 주최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각자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원하는 대로 하며 살진 않죠. 원하는 대로 하고 사는 건 지배자의 자유입니다.”
… 중략
“저는 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만.”
“동물성 제품을 소비하고 좋아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고, 사회 법규가 허용한 것을 하고 살면서 구속받고 있습니다.”
“비건이 되면 자유가 제한되지 않습니까?”
“동물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는 건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힘을 마음대로 쓰고 있을 뿐이죠. 선생님께서 누린다는 그 자유는 한 생명의 죽음과 고통을 전제로 합니다. 저는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에서 각자 원하는 대로 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동 체벌 문제도, 사형 제도나 고문 문제도 각자 원하는 대로 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기가 위해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법률과 규칙이 있어야죠. 법률과 규칙을 바꾸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할 순 있겠습니다만, 이런 법적 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약자를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 208-209, 분위기가 깨져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제 겨우 10개월 비건 지향을 하고 있지만 나도 나름 비건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은 그런 나 조처 ‘헉’하고 숨을 한번 들이쉬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대화의 끝에 결국 주최자는 설득된 것 같지 않고, 자신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당연시되던 것에 잠시 소란을 일으킨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뒤이어 저자는 이러한 논쟁은 동물해방을 위해 꼭 필요한 단계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인다. 

이는 국면을 전환하는 한 단계로, 인류학자 에릭 쇼비에 Éric Chauvier 가 말했듯이 “분위기가 한 번 깨져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시작되는 법”이다.

  • p. 210-211, 분위기가 깨져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런 저자도 ‘왜 고기를 안 먹기로 한 거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위와 같이 당당하게 대응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비건이 되고 나서 초기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위축됐고, 비건이라는 걸 밝히기가 부끄러웠다. 내가 비건이라고 말하면 상대방의 반응이 어떨까 두렵고, 행여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라는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질문에 이제는 그냥 “나는 동물을 먹지 않는 거야”라고 답한다고 한다. 이런 오랜 시간 동안의 우여곡절 뒤에 얻은 어떤 단단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때 고기 대신 동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내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며 “고기가 금지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인다. 비거니즘은 사회정의 문제이며, 우리가 왜 종 차별주의에 반대해야 하는지도 설명해 준다.   

  • p.195, 왜 고기를 안 먹기로 한 거야?

비거니즘이 사회정의 문제라는 주장은 다음의 문장에서 더 구체화되어 있다.

이 사회에서는 돈이 없고 몸이 불편하거나 남들과 조금 다르면 인간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게 당연시된다. 인간에 대한 폭력과 동물에 대한 폭력은 확실히 닮았다. 내가 동물 해방 문제에 민감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 p.33, <동물을 사랑하지만 고기는 먹고 싶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뽑으라면 단연 ‘바보는 지능이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하다’라는 장에 나오는 다음 부분이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볼 때 유독 이 장의 이름에 눈길이 간 것도 사실이다.

많은 작가들이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작가가 기질이나 직업상 다른 이들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직업이 쉽게 대우받지 못하니만큼 동물의 처지를 이해하기 더 쉬운 것 같기도 하다.
비건이라면 보호소 케이지에 갇힌 개의 기분이 어떨지, 어미에게 떨어져 울고불고하는 새끼 양의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도축장에서 총과 톱이 다가올 때 동물이 사로잡힌 공포감이 무엇일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건이 되려면 상상력은 필수다.  … 카를 크라우스 Karl Kraus가 한 말을 조금 바꿔보면 바보는 지능이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 상상력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고정관념을 물리치는 힘이 된다.   

  • p. 169-170, 바보는 지능이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하다

더불어 저자 자신이 작가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비거니즘을 말할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우호적이라는 다음 부분도 흥미로웠다.

내 경우에는 작가라는 직업이 상황을 해결하는 만능 키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관행이나 루트에서 벗어난 내 행동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좋게 봐주는 경향이 있다. 모든 문제에서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가라는 직업 덕분에 논란이 끝나지 않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비교적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 P. 206, 비건이 토끼는 아니다

나 역시 저자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비거니즘이 무엇보다 상상력과 공감의 능력이 꼭 필요한 운동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동물’과 ‘인간’이라는 두 개념을 극단에 놓고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에 동물까지 위해야 하냐’와 같은 흑백논리야말로 상상력과 공감의 빈곤함을 드러내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감은 양이 한정된 무엇이 아니고, 쓰면 쓸수록 더욱 예민해지고 풍부해지는 능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공감과 연민이라는 감정에 대해 ‘동물’은 인간과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부분에서 알 수 있다.

비건으로서 내가 끼지 않는 논쟁이 있다. 나는 “난치병에 걸린 어린이를 위한 치료법을 찾고 싶지 않냐”는 식으로 질문하는 사람과 설전을 벌이지 않는다. 그가 나와 제대로 토론할 생각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아픈 아이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바꾸지 않기 위해 애쓸 뿐이다. 이들은 우리를 오랜 흑백논리에 가두려고 한다. “당신은 동물을 사랑하지, 인간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 p. 88-89, 동물에 대한 폭력을 멈춰야 인간에 대한 폭력도 사라진다

공감이라는 게 어느 한쪽에 마음을 쓴다고 해서 다른 쪽에는 마음을 덜 쓰는 정서가 아니다. 외려 동물이든 사람이든 억압받는 자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수록 억압의 문제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 P.158,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과 생김새와 지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공장식 축산산업에서 동물들이 받은 처우는 너무도 가혹하다. 우리 인간이 충분히 동물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비건 지향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이 ‘비거니즘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비거니즘이 확산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세계가 뒤집어질 것이다.’와 이어진 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독서 체험이었다. 비거니즘이 정치운동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가진 무게가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에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더불어 동물은 인간인 우리와 함께 이 지구를 살아가는 존재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생명체라는 저자의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생각이 주는 근원적인 감동이 있다. 우리가 동물에게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행복과 자유다. 우리는 생산적이거나 쓸모 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동물에게 배운다. 일자리를 구하지 않아도, 의무와 구속에서 벗어나도 우리의 삶과 시간을 활용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법 또한 동물에게 배울 수 있다.    

  • p. 311, 동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 

이 글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동물 해방운동가들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생태주의를 넘어서’ 등등 그 밖에도 비건으로서 고민해 볼 문제들을 여러 방향에서 제시해주고 있다. 비건이 아닌 사람과 또는 동물과 비건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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