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밍 언어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해하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 N. 캐서린 해일즈 N. Katherine Hayles의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My Mother Was a Computer”. 제목이 가진 함의가 궁금해 집어든 책이기도 했다. 학부와 석사까지 화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에서 문학을 전공하기 전까지 컴퓨터가 자신의 정신적인 고향 역을 했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가 막연히 생각했다. 프롤로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내 책의 제목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는 앤 발사모 Anne Balsamo 의 “젠더화된 신체의 기술 Technologies of the Gendered Body”에서 가져왔는데, … 발사모의 어미니는 실제로 컴퓨터로 일했고, 발사모는 이 가족사의 한 편린을 이용하여 정보기술의 젠더 함의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 오늘날 이 문장이 우리에게 의미론적 충격을 주는 이유는, 노동이 인간에서 기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에 극히 중요한 친족 범주를 위반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 14

물질성은 “글 쓰는 기계”에서 정의한 대로 물리적 특징과 의미화 전략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창조되는 창발적 특질이다. 그래서 물질성은 물리적 실재와 인간의 의도가 만나는 지점을 표시한다. 나는 ‘사실의 문제 matters of fact’에서 ‘관심의 문제 matters of concern’로 전환하도록 촉구하 브루노 라투르를 따라, 물질성을 인간 의미에 중요한 물질 matter 의 구성으로 생각하고 싶다. 물질성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내가 계산적 우주 Computational Universe 라고 부르는 것, 즉 우주가 모든 물리적 실재의 기저에 있는 광대한 계산 매커니즘에서 실행되는 계산 과정을 통해 생성된다는 주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계산이 존재론적 의미를 갖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과학자들에게 계산은 실재가 원자적, 분자적, 거시적 수준에서 연속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되는 수단이다. … 이런 맥락에서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는 컴퓨터 우주가 어머니 자연을 대신하게 된다는 암시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어머니 자연이 인간 행동과 물리적 실재 모두의 근원으로 여겨졌듯이, 이제는 컴퓨터 우주가 우리 모두의 마더보드 Motherboard 로 생각된다.

  • 16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는 컴퓨터의 기능을 이해(또는 오해)하게 해주는 일종의 의인화된 투사를 표현한다. 의인화된 투사는 컴퓨터의 실제 작동을 모호하게 만들고 디지털 주체를 인간과 같은 동기, 목표, 전략을 지닌 자율적인 피조물로 이해하는 문화적 상상계를 창조한다. 또한 이러한 투사는 인간 존재가 어느 정도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그 밑바닥에 역설적인 의미도 깔려 있다. 부재의 “디지털 주체”는 상호관계 속에서 인간과 인공 생명체의 이러한 변증법적 위치 설정을 시사한다. 연구 영역을 설명하는 어구로 읽힐 수 있는 ‘디지털 주체 digital subjects’는 디지털리티, 특히 계산적 우주라는 주체 subjects 와 이러한 하이브리드 주체성 subjectivities 을 재치 있게 연결한다.

  • 18-19

우리는 주위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는가? 니컬러스 게슬러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자원은 크게 수학 방정식, 시뮬레이션 모델링, 담론적 설명의 세 범주로 나눌 수 있다. … 담론적 설명에는 역사, 철학, 문화인류학처럼 뛰어난 비문학적 형식을 포함하여 다른 형식들이 많이 있다. 이 담론들 가운데 문학은 마리-로르 라이언이 말했듯이 “가능한 세계들”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소설 읽기가 환각과 비슷하다는 키틀러의 주장은 문학이 지닌 한 가지 주된 매력을 부각시킨다. … 이런 점에서 칼 심스의 “진화한 가상 생명체”(8장에서 논함) 같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처럼 문학 텍스트도 우리가 우리 자신과 같은 존재로 (오)인식할 수 있는 생명체들이 사는 가상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에, 문학은 다른 담론 형식들보다 더 시뮬레이션처럼 기능한다.

  • 20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디지털 주체와 문학 텍스트”가 제목이자 책으로서 갖는 궁극적이며 가장 중요한 의미는, 현대의 포스트휴먼 배치들이 계속해서 디지털 주체와 문학 텍스트, 컴퓨터 프로그램과 인간의 심신에서 진화해 나갈 때 발생하는 복잡성은 어떤 식으로도 환원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 22

디지털 주체와 문학 텍스트를 상호매개로 다시 생각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이 단번에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집단적으로 계속해서 진행해야 할 기획이며, 이 책이 그 일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 28

1. 상호매개: 텍스트성과 계산 체제

‘계산적 우주’란 개념을 처음 이 책에서 읽었을 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떻게 단순한 계산이 이 복잡한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가?’란 의문이 바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코드가 내가 코드를 저자의 말을 빌리면 ‘상업적 제품 주기 안으로 들어가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학 안으로 견고하게 통합된다’는 특성만을 유일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만큼 아직 ‘코드의 범위와 정도,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에 동의하며 계속 읽어나가게 되었다.

최근에 디지털 알고리즘을 자연 자체의 언어로 보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스티븐 울프람, 에드워드 프레드킨, 해럴드 모로비츠가 주장하듯이 우주가 근본적으로 계산적이라면, 코드는 컴퓨터만이 아니라 모든 물리적 실재의 공통어로 격상된다.

  • 32

2. 말하기, 글쓰기, 코드: 세 가지 세계관

스콧 로젠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코드가 언어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엘런 울만)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영어를 사용해 시를 창작한다든가, 아주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표현하려 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에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결국 컴퓨터 프로그램이 갖는 의미는 단 한 가지, 그것이 하는 일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학자가 읽는 텍스트가 아닙니다. 프로그램의 의미는 곧 그것의 기능입니다.”

  • 81

절차 언어 procedural language 는 프로그램을 기계에 명령어로 기능하는 모듈화된 절차들의 흐름(흔히 흐름도로 도표화된다)으로 개념화하는 반면, 객체 지향 언어들은 자연어를 본떠서 만들어지고, 명사(즉, 객체)나 동사(시스템 디자인의 프로세스들)에 상응하는 것을 이용하는 문법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개념화의 중요한 이점은 브루스 에켈이 “C++로 생각하기”에서 설명하듯이 프로그래머들이 문제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것과 같은 용어로 해결책을 개념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절차 언어에서는 반대로 문제를 현실 세계의 용어로 서술하고, 해결책은 기계가 실행할 수 있는 행동들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 94

C++는 의식적으로 자연어를 본떠 만들어졌다. 일단 널리 이용되기 시작하면 자연어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브루스 에켈의 다음과 같은 논평에서 이러한 양방향의 흐름을 볼 수 있다. … “컴퓨터 혁명의 기원은 기계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 프로그래밍 언어의 기원은 그 기계와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컴퓨터는 기계라기보다는 마음을 확장한 도구이며, 다른 조율의 표현 매체이다. 그 결과, 이 도구들은 기계처럼 보이기보다는 우리 마음의 일부처럼, 그리고 글쓰기, 그림, 조각,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과 같은 다른 표현 매체들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은 표현 매체로서의 컴퓨터를 향한 이러한 움직임의 일부이다”(“C++로 생각하기”, 35).

  • 98

거대 기업들의 헤게모니적 통제에 저항하고 전복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코드를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거기에서 전략들이 나올 수 있다. … 코드와 언어의 병치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인간의 사고와 기계 지능의 상호매개와 이 상호매개가 담고 있는 모든 위험과 가능성, 해방, 복잡성들이다.

  • 100

4. 매체 번역하기

알렌 르니어는 인쇄를 디지털 매체 안으로 들여오려면 텍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암묵적인 정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주장을 확대하면서 매츠 달스트롬은 마이클 스퍼버그-매퀸을 따라, 한 텍스트의 마크업(조판 지정)은 “그 텍스트에 관한 이론이며, 일반 마크업 언어는 텍스트에 대한 일반 이론, 즉 개념이다”라고 말한다.

  • 149

5. 수행적 코드와 수사적 언어: 닐 스티븐슨의 “크립토노미콘”

수행적 코드는 기계가 일을 하게 하고, 우리는 기계를 제어해야 한다. 반면 수사적 언어는 사람들이 일을 하게 한다. 그리고 설득력이 있으려면, 효과를 내려면, 작가는 독자에게 마음에 딱 들어맞는 이미지를, 기억할 만한 장면과 심리적 복합성을 뚫고 나아가는 내러티브를 공들여 만들어야 한다. 역설, 모순, 아이러니를 포함해 작가의 전문적 작업을 구성하는 모든 기교를 동원해야 한다. 비록 이 기교들이 어떤 관점에서는 거짓말로 보일 수 있지만, 모든 문학도는 작가가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다.

  • 196

마이크로소프트는 재능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하여 인터페이스들을 만들어내게 하는데, 스티븐슨이 보기에 바로 그 인터페이스들이 사용자들을 유혹해서 무력하게 만드는 그것들이다.

  • 200

“크립토노미콘”에서 이렇게 안쪽의 핵심을 바깥쪽의 은유적 껍데기에 둥지를 틀 듯 넣는 것은 <크립토노미콘>이라 불리는 허구의 암호작성술 개설서를 통해 재생산된다. … 엘리자베스 와이저가 인용한 스티븐슨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 암호작성술의 뒷면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설명하듯, 언어는 “정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수사적 언어는 코드가 드러내는 것을 언어적 구성 안에 숨긴다. … “크립토노미콘”은 <크립토노미콘>이 명령어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강려한 코어임을 들어내기 위해 안팎이 뒤집힌다. 반면 소설은 독자에게 진짜 명령 구조를 숨기는 윈도우즈나 맥킨토시 운영체제와 유사하다.

  • 216-218

7. 행위자의 가면 벗기기: 스타니스와프 렘의 ‘가면’

이 부분은 여러 번 읽어도 바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들뢰즈, 가타리, 라캉이 자동자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추후에 직접 확인해봐야 그 논리가 다가올 듯하다.

과타리가 ‘기계적 이질생성’에서 시사한 대로, 욕망은 자유롭게 부유하는 행위자로 행동하면서도 기계적 작용에 단단히 기반을 두고 있다. 언어는 튜링 기계로 간주되는 무의식의 작용에서 창발하므로, 언어가 만들어내는 욕망의 표현들은 아무리 인간적으로 보인다 해도 이미 그 기원에서 언제나 기계적인 것에 상호침투되어 있다. 결국 욕망과 욕망에서 솟아나오는 행위성이 실제로는 이진 코드의 수행일 뿐이라면, 컴퓨터들도 인간 못지않게 진정한 행위성을 가질 수 있따. 이런 재설정을 통해 들뢰즈, 가타리, 라캉은 자동자를 이용해 인간 행위성에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자동자를 행위자로 설정한다.

  • 268-269

이 책이 작품을 분석하는 방식은 해당 작품을 직접 읽지 않고서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해한 용어를 사용해서 접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논의에 필요한 내용만 발췌해서 설명하고 있어서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지능 기계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가 그것들과 상호작용할 때의 상호성을 인정하는 것, 우리가 그들을 창조할 때 그들도 우리를 창조한다는 복잡한 역학을 인정하는 것이다. … ‘우리가 만드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무엇인지’는 함께 공진화한다.

  • 366-367

용어

  • 주체성: 현대 철학에서, 의식과 신체를 가지는 존재가 자기의 의사로 행동하면서 주위 상황에 적응하여 나가는 특성.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행동하는 힘.
  • 주체: 어떤 일이나 작용의 중심이 되는 대상. 주로 ‘주인’ 또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
    • 19
  • 사이버네틱: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서 조타수(操舵手 ; steersman)라는 뜻을 갖는다. 이는 흔히 인공두뇌학(人工頭腦學)이라고도 불리는데 의사소통과 통제를 통한 자율규제(자기제어) 장치를 통칭한다. 이 이론은 1940년대에 자율추적(自律追跡 ; self-monitoring) 장치, 자율통제(自律統制 ; self-controlling) 장치 및 자율조정(self-steering) 장치를 갖춘 기계의 등장과 더불어 발전하게 되었다.
    • 24
  • 에르고드적 문학: 읽는 행위 자체에 독자의 ‘노력’이나 ‘참여’가 필수적인 문학
    • 62
  • 로고스
    • 말과 이성, 대화,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 또는 신을 표현하고 있는 단어
    • 70
    • https://tillich.tistory.com/162
  • 재전유: 원래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의미나 상징, 혹은 혐오적인 표현 등을 다시 가져와 자신만의 의미나 의도로 재정의하여 재창조하는 행위
    • 77
  • computationcaize: 계산화하다
    • 99
  • 이데올로기: 개인이나 사회 집단의 사상, 행동 따위를 이끄는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
    • 99
  • 네러티브: 종래의 ’이야기’는 시와 소설로 대표되는 문자언어로 표현되어 왔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에서의 내러티브라 함을 살펴보면 매우 많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적 문자기호는 물론, 영상의 미장센, 명도나 색채, 번짐과 흐림과 겹쳐짐으로 전하는 영화적 관습에 따른 영상언어로서의 기호가 있으며, 음악과 음향이 전하는 기호 또한 포함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수많은 사건의 집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내러티브’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 115
    • https://ko.dict.naver.com/#/entry/koko/91317f7a6fae69ff6406984d8133a1b3
  • 조판: 조판은 과거 활자 인쇄에서 글자를 배열하여 인쇄용 판을 만드는 작업에서 시작하여, 현대에는 디지털 방식으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배치하고 책의 지면을 디자인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즉, 원고를 바탕으로 글꼴, 크기, 줄 간격 등을 조정하여 책의 최종적인 형태를 만드는 과정
  • 정서: 쁨, 분노, 슬픔, 두려움 등의 일시적인 감정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정서라는 것은 더 오래 지속되는 심리적 상태나 기분을 나타낸다
    • 289

저자의 참고 자료

  • 말하기
    • 페르디낭 드 소쉬르,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 글쓰기
    • 자크 데리다
      • 그라마톨로지
      • 입장들
      • 글쓰기와 차이
      • 철학의 여백
  • 디지털 컴퓨터 코드
    • Stephen Wolfram, A New Kind of Science
    • Edward Fredkin, Introduction to Digital Philosophy,
    • Harold Morowitz, The Emergence of Everything
    • Ellen Ullman, Close to the Machine
    • Matthew Fuller, Behind the Blip
    • Matthew G. Kirschenbaum, Editing the Interface
    • Bruce Eckel, Thinking in C++
  • 기타
    • 개럿 스튜어트, 책 읽는 목소리들
    • 로스 페케누 글라지에, 디지털 시학
    • Mark Poster, What’s the Matter with the Internet?
  • 비판적 소프트웨어 연구
    • Matthew Fuller, Behind the Blip
    • Matthew G. Kirschenbaum, Virtuality and VRML
    • McGann, The Textual Con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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