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당사자 연구 1-3장 후기
- 아야야 사츠키, 구마가야 신이치로(지은이),유기훈,안병은,봉성균(옮긴이), “발달장애 당사자 연구”, EM실천, 2025
- 3장까지 범위를 26.01.13 당장함께 장애학 읽기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우선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옮긴이들이 안내한 것처럼 일본에서의 ‘발달장애’가 우리의 그것과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발달장애’는 지적장애를 제외한 자폐성 장애나 학습장애, 난독증, ADHD 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통상적으로 ‘지적장애’를 연상시키는 발달장애라는 용어를 그대로 제목에 사용해도 될지가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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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발달장애 당사자연구: 천천히, 신중하게 이어지고 싶다”)처럼 아야야씨는 ‘천천히 신중하게 이어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배고픔, 허기 등과 같은 모호한 감각을 얼마나 관심있게 관찰했는가가 느껴지는 당사자 연구를 읽으니 그녀가 자신의 신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정립하기까지의 시간이 느껴졌다. 특히나 이런 미세한 감각을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표현하는 게 흥미로웠다. ‘원행성, 필행성, 종행성, 어포던스, 꿈침입, 플래시백, 1인 반성회’ 등등의 개념이 그것인데 아야야씨가 이 단어들로 스스로를 설명하자 놀랍게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고집사님은 ‘자기소개’라는 용어를 보며 각각의 신체에게 발언권을 주고 경청하는 아야야씨를 보니 자폐인은 기본적으로 경청모드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적이었다. 이 공들인 자기 설명서를 읽고 있자니 이렇게 이해가 잘 되는데 왜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했을까 나의 무신경함이 부끄러웠다.
어렸을 때 글을 읽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몇달이고 앞을 보지 못했다는 부분을 보고 내가 그 당시가 떠올랐다. 아야야씨 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어느 정도는 해야만 한다에 나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실패해서 스스로를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했었다. 나중에 몸이 안좋아져서 병원에 갔다가 스트레스성 장염, 알레르기 비염, 갑상선 항진증 등등의 진단을 받고서야 모든 게 나의 의지가 부족해서는 아니라 몸이 아파서 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안도했었다. 그 경험을 떠올리니 정상 규범에 대한 압박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며 아야야씨가 더 이해가 잘 되었다. 더불어 그녀가 안도할 수 있는 시간의 속도와 공간의 구조가 있다는 부분을 보고 그녀처럼 예민하지 못해서 우리도 못 알아차리지만 사실 지금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압박을 주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책을 읽으면 자폐를 가진 당사자가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이렇게나 간절히 원하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예컨대 4장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보자.
이와 같이 내게는 사람과 만나는 전후에 여러 고통이 동반된다. 그 때문에 긴 세월, ‘사람과 이어지고 싶지만 이어질 수 없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어지고 싶어도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듯이 떠들고 들떠있는 동세대의 집단과 같은 것이다. 거기에 들어갈 수 없는 나에게 있어서는, 단지 ‘집단 속에서 즐거운 기분을 공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광경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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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사람과 이어지는 것에 동경을 품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이어지는 만족감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식물이나 하늘, 달이라면 이어져 있는 감각이 있다. 마음이 왕래하고 열려서 차올라가는 즐거움이나 충실감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혹시 사람들이 집단 속에서 ‘자신이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울타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자각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 즐겁다는 기분이 자연스럽게 솟아 올라, 그 기분을 다른 구성원과 공유한다’는 체험을 맛보고 있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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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 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알기까지,자산의 체온 변화에 대한 감각이 일반적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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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을 때 아야야씨 입장에서는 소위 정상이라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되었겠구나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비난하는 말들, 타인의 잣대로 자신을 보면서 엄살이다, 이상하다라고 자책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스스로를 이렇게 거리를 가지고 보기까지 어떤 곡절을 겪었을지 가늠이 안갔다. 나도 나를 객관화해서 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생각해보니 더 그랬다. 또한 자폐 당사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행동원리가 정확한데 그 반대는 왜 그닥 진전이 없는지, 불가능했던 게 아니라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는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당사자연구가 나왔을 때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그 행동들을 메커니즘으로 이해하자는 주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몸 컨디션이 안좋으면 아야야씨가 허기 체온 변화, 시각/청각 포화의 경우에서 설명하는 메커니즘과 같은 일이 내 신체에 작동했다. 그녀와 다른 게 있다면 나의 신체는 결정을 내리는 속도가 빨랐다는 점이다. 결국 그녀의 장애와 비교했을 때 내 몸도 강도가 약할 뿐 같은 작동 원리로 움직였던 것이고, 결국 모든 게 아야야씨의 말처럼 스펙트럼의 문제였구나 깨달았다. 다른 장애학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처럼 이와 같은 장애가 나와는 상관없다는 확신은 또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단 생각이 여기서도 연결되었다.
애초에 커뮤니케이션 장애란 소통의 양측 간에 생기는 어긋남이기에, 그 원인을 한 쪽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미국인과 일본인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 ‘일본인은 커뮤니케이션 장애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일 것이다.
- 14-15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나오는 이 날카로운 비판때문에 내가 자폐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책속으로 진입했다. 책을 덮는 시점에 소통이란 건 함께 하는 작업임을 그 누구보다 노력한 아야야씨만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구나 느꼈기에 이 지적이 적실하다고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즐기기 위해서는 결코 ‘고르지 않는 것’, 즉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조형이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으로 눈의 기쁨을 맛보고, 되는대로 맛을 상상한다. 정립을 재촉받지 않고, 느긋하게 눈에 날아드는 채로 ‘어머, 이 색감 좋다’ ‘맛있겠다’ ‘입체감이 있어 멋져’하고 조금 신나는 정도의 기분으로 있으면 된다. 파라다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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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쇼핑을 할 때 아야야씨는 구매를 위한 선택이 필요없는 윈도우쇼핑을 할 때 파라다이스같다(고 언급하는가’라는 질문도 세미나 때 나온 인상적인 물음이었다. 예컨대 아야야씨가 쇼핑을 하다가 탈진하거나 감각포화에 얼어붙어버리는 문제행동을 할 때 왜 윈도우 쇼핑 때는 안 그러면서 물건을 사야할 때만 그러는 거냐고, 꾀병부리는 거 아니냐고 따져묻는다면 아야야씨의 당사자 연구는 우리가 이와 같은 물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아야야씨를 이해하고 그녀를 도울 수 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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