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필연적 혼자의 시대, 다산초당, 2026
결혼하면 여자인 나는 돌봄 독박을 쓰게 될 것이다. 이게 내가 부모님이 결혼이란 화두를 꺼낼 때 내세운 논리였다. ‘5장 왜 셰프도 혼자 살먼 라면만 먹을까?’란 장에 나온 살림에 대한 정의를 읽으며 내가 놓쳤던 지점을 깨달았다.
멕시코의 식생활 문화를 연구해 온 우리베 교수는 2019년에 “나는 위층에서 혼자 TV를 보며 밥을 먹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년느 65세 이상의 혼자 사는 노인 여성들을 인터뷰했는데, 젊은 시절 가족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았던 이들이 자녀 분가와 남편 사별 이후 거의 식사를 챙기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주로 가족과 생활하던 거실과 주방이 있는 1층이 아니라, 위층 침실에서 TV를 보며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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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례들은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요리를 잘하는 살림 9단이라도 혼자 살게 되면 부실한 식사를 하게 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혼자 밥 먹기 어려운 이유는 혼밥의 노하우나 살림 기술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바로 그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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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라는 단어의 원형인 ‘살리다’는 살리는 대상을 전제하고 있다. 즉 ‘살림’은 관계에서 시작하는 말이다.
나는 집안일, 가사, 돌봄노동처럼 ‘일’ 중심의 표현보다는 순우리말인 ‘살림’이라는 말이 돌봄의 의미를 더 정확하고 풍부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 살림은 ‘살리다’에서 온 말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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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에 사는 연구원 정고운 씨는 자신이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하숙집 아주머니를 통해 타인에 대한 애정이 살림의 본질임을 체감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자신의 빨래를 해줄 때 의류 색깔이나 재질에 따라 분류해 세탁하고 손빨래까지 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세심한 정성을 느낀 것이다. “돌보는 행위는 일단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이 좋은 상태에 놓이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되는 거죠. (정고운, 석사급 연구원, 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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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사라지는 것은 살림하는 기술이 아니라 살림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인 인간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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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 씨나 김숙 씨의 전략 또한 살림이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행위임을 드러낸다. 살림은 누군가를 돌봐주고 그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미를 갖는 일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그녀들은 자아를 분화시켜 내적 상대를 만들어서 이 공백을 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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